The most plausible opinion I think, about why jin joong kwon critisize D-WAR so severly
| [이균성]진중권은 왜 ‘디워’를 끝없이 깔까? |
| 2007년 08월 14일 오전 03:16 |
| 이균성기자 gslee@joynews24.com |
진중권은 흡사 ‘돈키호테’다.
그가 이런 평가에 불쾌해 한다 해도, 필자는 이런 생각을 버릴 마음이 없다. 그는 400년 전 세르반테스가 만든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말라깽이 로시난테라는 말을 타고 풍차를 향해 달려간다. 중세 유럽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지금 대중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피할 생각도 없다. 그게 그다.
필자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필자가 이해하기로, 보통의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욕먹기를 싫어한다.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집단적인 비난을 받는다면, 견딜 사람이 별로 없다. 그게 보통 사람이다. 뒤집어 말하면, 진중권 또한 그럴 이유가 별로 없다. 그가 최소한의 이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지금의 분위기 속에서, ‘100분토론’에 나와 ‘디워’와 심형래 감독을 비판했을 때, 대중이 보이게 될 반응을 몰랐을 리 없다.
달리 말하면, ‘디워’ 및 심형래 감독과 관련하여, 김조광수 대표 및 이송희일 감독이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었고, 그런 현상을 다 알고 있으면서, 그는 100분토론에 나와 그들보다 더 험하고 직설적인 발언을 하였고, 그동안 김조 대표와 이송 감독에 쏟아지던 대중적 비난을 온 몸으로 혼자 감당하였다.
왜 그는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해야 했을까. 합리적으로 볼 때, 그가 이런 선택을 했던 이유는 세 가지 경우 밖에 없다.
| 먼저 그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놓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심히 모자라거나 어딘가 상당히 비뚤어진 사람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는 지금도 큰 문제없이 강단에서 제자들과 밀접하게 호흡하고 있으며, 미학에 관한한 국내에서 남부럽지 않는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그의 이성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그의 지나친 명예욕을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아주 속 보이는 행동이라 할 수 있는데, 유명세에 괜한 안티를 걸어 스스로 커보고자 하는 욕구라 할 수 있다. 욕을 먹으면서 오히려 유명세를 얻는 이른바 ‘스캔들 마케팅’이란 게 그런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승복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진중권은 적어도 미학을 기반으로 적잖은 대중적 인지도를 가졌고, 구태여 더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지금까지 확보한 대중적 인지도 또한 그런 방식으로 획득한 건 아니기 때문. 그래서 마지막으로 의심해볼 건 ‘아집’과 ‘불필요한 권위의식’이다. 사실 디워와 심형래 감독을 지지하는 많은 네티즌이 충무로와 기존 영화 평론가를 비판한 근본적인 이유 또한 이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특권으로 똘똘 뭉친 ‘기성 권위주의’에 대한 집단적 거부감이 그것이겠다. 또 이런 분위기는 ‘디워’ 논쟁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이 활짝 꽃을 핀 이후, 일반적인 경향기도 하다. 누구나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고, 특히 그 발언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특권은 오래전에 죽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측면에서 일반 대중이 보기에, 진중권은 지독한 아집과 권위의식에 매몰된 전문가처럼 보인다. 그게 화난 네티즌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고, 디워 및 심형래 감독과 관련해 모든 욕을 그가 껴안게 된 주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또한 진중권의 실체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진중권은 모든 권위와 특혜에 대해 누구보다 날선 비판을 해온 사람이다. 오히려 진중권은 권위와 특혜를 해체하는데 존재의 이유를 갖고자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역전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필자는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사이버 전체주의’에서 찾고자 한다. 진중권은 사실 ‘디워’의 작품성을 논하고자 했던 게 아닐 게다. 미학을 전공한 그에게, 작품이란 당대에 뛰어난 평가를 받은 작품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당대에 혹평을 받아도 역사적으로는 인정되는 작품이 수없이 많을 것이며, 당대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지만 권위주의 집단으로부터 철저하게 매도당한, 그리고 금지된 작품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그는 절대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디워’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대야 했다. 그에게 ‘디워’의 작품성은, 질적 수준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도 논할 처지도 입장도 아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진중권이 메스를 댄 것은 ‘디워’가 촉발시킨 ‘전체주의 경향’이다. 어떤 현상이 옳건 그르건, 또는 다수가 찬성하건 소수가 찬성하건 간에, 집단적 광기에 매달려, 소수의 견해를 무참히 박살내고야 마는 ‘다수의 폭력’, 진중권이 집단적 비난을 껴안으며, 경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일 게다. 물론 다수가 집단적 폭력 양상을 보여야만 했던 어떤 이유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일이다. 이번 진중권이 보였던 행동 속에는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였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이 그처럼 분개해야만 했던 것은, 이번 디워 논란이 ‘황우석 망령’의 부활로 비쳐졌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우리는 굳이 그의 돌발적 발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끝없는 학대, 아무리 논해도 해결되지 않는 학교의 ‘왕따’ 문제, 다수의 네티즌이 연예인 한 명을 두고 벌이는 ‘사이버 학살’, 다양한 창의성이 오히려 이상한 것으로 비춰지는 현실…. 군대식 전체주의는 사라졌지만, 한국 사회라는 ‘거울’은 여전히 소수와 다양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디워와 심형래 감독의 팬이 그처럼 열정적으로 뭉쳤던 까닭은 그가 집단적 권위주의의 틀을 깬 영웅인데 과거 권위주의 세력이 그를 무참히 짓밟는다고 본 때문이고, 진중권 등이 그러한 디워 팬의 행동에 날선 비판을 한 것 또한 그들의 행동이 전체주의 소산이라고 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아직 ‘전체주의의 포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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